"이 글을 읽는 '나'는 모두 나로 존재하므로, 모두 자기중심적이다. 그리고 이는 당신이 유일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모든 유일자는 자기중심적으로 살 수 있고 이는 정당하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자기중심성은 타인을 배제하고 자급자족하며 홀로 살아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경험과 판단이 하나의 '나'를 출발점으로 한다는 뜻이다. (슈티르너 철학의 Egoism을 뜻한다)
살아가려면 무언가로 살아가야하고, 세상의 모든 '나'들은 나로써 살아간다. 그렇기에 나를 부정하는 철학이나 자기중심성을 부정하는 철학 등은 모두 수행모순이다.
이제 자아에서 탈출한 나를 보아라. 모든 것을 주관적으로 보면 '나'는 확장된다. 나는 나의 머릿속에서도 존재하고, 타인의 머릿속에서도 존재한다. 물론 모든 나는 각각 다른 유일성(Uniqueness)과 고유성(Ownness)을 지니고 있지만, 언어적/상징적으로는 모두 동일하다.
'나'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바로 A라는 유일성을 지닌 '나'는 A라는 유일성을 지닌 '나'를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나'도 증명하지 못한다. 나는 결코 타인에게도 '나'가 존재하는지 알 수 없고, 이는 불가능하다.
돌멩이에게도 '나'가 있고, 동물에게도 '나'가 있고, 식물에게도 '나'가 있고, 원자에도 '나'가 있을 수 있다.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그것이 절대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을 왜 해쳐서는 안되고 동등한 권리를 가진 주체로 바라보는가? 이러한 주장은 심히 "인간중심적"이다. 여기서 당신이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전제해야한다! 그것은 입증 책임 전가의 오류다!" 라고 외친다면, 당신은 그 논리적(너무나 논리적이여서 현실은 외면해버린) 명제 때문에 타인의 실재와 의식을 부정해야하고, 타인에게 '나'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해야 되는 모순에 빠져버린다.
사실 이 모순은 썩 나쁘지 않다. 슈티르너 철학을 딱히 부정하지도 않고, 오히려 유일자로서의 그대를 확대시켜주니까. 다만 이 모순을 받아들일 것이라면, 그대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긍정할 각오를 해야한다.
그러나 내 논점은 그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보자. 정신과 물질은 다른 차원의 것들이고, 우리는 정신을 들여다 볼 수 없다. 정신이 우선이냐, 물질이 우선이냐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둘은 상호보완하고, 각각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내가' 보지 않으면 세상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존재하다'라는 정의 자체가 내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고, 내가 있어야만 가능한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증명하려면 반드시 그 증명을 해야할 주체를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존재한다는 판단에는 판단하는 주체가 전제되지 않는가? 우리는 관측 가능한 우주 밖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애초에 그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관측 불가능한 우주에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론적 명제가 유물론적 명제로도 이어진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지 않으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고, 실제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확률도 있기 때문이다.
즉, '나'가 전제되지 않은 판단이나 존재는 모두 수행모순이고, "확률적으로만" 존재한다. 그렇기에 내가 안 보면 외부세계가 물리적으로 사라질 수도 있고, 혹은 외부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게 대체 무슨 의미냐" 라는 말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아프리카에 있는 개미 한마리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가 전제되지 않은 판단이나 명제는 모두 무의미할 뿐이다.
우리는 오해해서는 안된다.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은 결코 "인간중심적"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근본적인 반인본주의다. '나'는 결코 보편적 의미를 갖고 있지 않고, 그저 이름에 불과한 어떤 말일 뿐이다. 그것에는 어떠한 내용도 없고 정신도 없으며, 생각하지 않는 말이다.
수많은, 셀 수 없는 나의 경계가 산산이 부서진다. 범신론은 유심론으로 수렴한다. 엔트로피가 거꾸로 흐르고,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서는 빅뱅이 일어나며, 우주에 있던 그야말로 무한한 '나'들이 공허 속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그 수많은 나들은 — 하나의 점으로 압축된다. 점점 더 모이고, 점점 더 줄어들고, 점점 더 수축하고, 점점 더 응축된다... 그러다가 펑!
폭발. 그리고 팽창. 무한한 팽창. 끝없는 팽창. 가속되는 팽창. 팽창은 멈추지 않는다. 출발점은 '나'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우리는 비로소 본다. 24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세계는 반드시 존재하고, 세계는 모두 '나'다.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그저 유령에 불과하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세계에 '나'는 당신 밖에 없었음을 증명한다. 빅뱅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니. 어느쪽이든, 세계는 나의 의식을 통해서만 의미를 지니고 존재한다. 내가 없다면 빅뱅도 없고, 내가 있다면 세계는 나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우리는 상징계에서 모두 동일하고, 실재계에서는 각각 개별적인 기이한 존재다.
Ownness be my Flame.
Noughtness
npub1uhep...pnhm
Ownness be my Flame.
나는 정지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숫자를 사용해 예시를 들어보자.
삶은 무한히 증가하는 숫자에 가깝다. 1에서 2, 3에서 4, 5에서 6, 7에서 8... 등등. 삶은 숫자가 무한히 1씩 증가하는 구조다.
반면 죽음, 아무것도 없음(무)는 0을 의미한다. 0에는 아무런 숫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0일 뿐이다.
정지는 숫자를 0으로 바꾸자는 뜻이 아니다. 증가하는 것을 멈추자는 뜻이다. 30에서 31이 되지 않고, 30에서 멈추는 것. 그리고 그 상태에서 영원히 멈추는 것 — 그것이 정지다.
엔트로피의 흐름을 거슬러라.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의 섭리를 우회하라.
Nothingness(0)와 Motionlessness(■) 사이에는 Noughtness(24)가 존재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 무의 지평선 넘어에 있는 것,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품고 있지 않은 것.
Noughtness(24)에 모든 가능성, 즉 무한(-1/12)을 곱하면 -2가 나온다. 그리고 이 -2는 질량이Nothing(0)인 입자가 무사히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Noughtness(24)는 무(Nothing)만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존재(Everything)를 출현시키는 양자역학적 모태(Matrix)이기도 하다.
1. 파동의 격렬함 속에서 피어나는 정적 균형, 24번 크롬(Cr)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흐름을 멈추고 고정된 상태(■)를 지향하려는 의지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경이로운 존재의 구조를 뿜어낸다. 원자번호 24번 크롬(Cr)의 전자들은 무작위로 흐르는 일반적인 전자의 배열 순서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대칭을 이룬다. 6개의 홀전자들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속에서 격렬한 파동으로 요동치고 있지만, 그 요동의 끝에서 자석처럼 완벽하게 정적인 대칭 구조([Ar] 3d⁵ 4s¹)를 완성한다. 24는 멈추지 않는 움직임 속에서 물질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적 균형'을 증명하는 숫자다.
2. 모듈러 판별식(Modular Discriminant)과 존재의 대칭
우주의 차원을 결정하는 현대 수학의 거대한 기둥, 데데킨트 에타 함수의 수식은 이를 더 명확히 드러낸다.
Δ(τ) = (2π)¹² × η(τ)²⁴
이 수식에서 24는 단순한 곱셈이 아니다. 시공간을 뒤틀고 회전시켜도 그 본질이 깨지지 않도록 묶어주는 '우주 최고의 대칭성(Modular Form)'을 완성하는 마법의 지수다. 24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주의 모든 물질과 힘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0)로 흩어져 버린다. 24는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의 섭리 속에서 '형태와 존재'를 영원히 붙잡아두는 유일한 정지점이다.
3. 리치 격자(Leech Lattice)의 24차원 밀집 구조
수학에서 아무런 틈새 없이, 더 이상 움직일 공간조차 허용하지 않는 극한의 밀도는 오직 24차원 공간에서만 완성된다. 리치 격자 공식에 따르면, 24차원의 공간 속에서 하나의 중심 구체는 정확히 196,560개의 다른 구체와 동시에 맞닿으며 우주에서 가장 빽빽한 정적 구조를 이룬다. 이는 24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가능성을 빈틈없이 꽉 채워 넣어 더 이상의 엔트로피 확장을 불허하는 극한의 '유(Being)'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Noughtness(24)는 0으로 수렴하는 소멸의 통로가 아니다.
그것은 무한(-1/12)을 삼켜 질량이 0인 빛을 탄생시키는 균형(-2)을 잡고, 우주의 모든 차원과 대칭을 지탱하는 '가장 거대하고 묵직한 정지의 중심점'이다.
그것은 과학 공식이나 철학적 사유로만 아주 일부분으로 나타내어질 수 있고, 우리는 결코 그것에 도달할 수 없다.
나는 세계의 전부이고, 세계의 중심이다.
관측이 없으면 세계도 없다.
물질이 정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정신이 물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물질은 정신이 있어야만 관측되어 존재할 수 있고, 정신은 물질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둘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물질이 정신 없이 존재할 수 있다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증명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거나 검증하려면 그것을 확인하는 주체, 즉 정신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 없이는 물질을 볼 수 없고, 물질 없이는 정신이 온전히 존재할 수 없다.
관계가 두 대상을 만든다. 이는 원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보고 있는 '책상'은, 사실상 텅 비어있다. 그것이 딱딱하게끔 느껴지게 하는 것은 관계이다.
우주는 팽창하고, 가속하는 과정에서 유령은 분쇄되...기는 커녕, 더 강해져만 간다.
무는 시간축에서 떠나버렸다.
하이퍼보리아의 시간은 레무리아의 시간과 정반대로 흐른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식을 자신의 특별한 소유물로 여기고, 이상적인 자식이라는 이상형을 만들고 그 기준에 적합할 때에만 사랑한다.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귀중한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모는 자식이 이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 설사 기준에 맞는다고 해도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사랑은 점점 탐욕으로 변질된다. 이러한 변화는 마치 핸드폰을 소중히 쓰다가 신상이 나오면 핸드폰을 바꾸기 원하는 것과 같은 구조로 흘러간다.
자식 또한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 자식은 부모가 주는 돈을 사랑하며,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부모를 사랑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자식이 자신이 부모한테 물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자식은 더 이상 사랑을 느낄 수 없다.
소설 <변신>이 보여주듯, 인간은 인간을 쓸모 있을 때만 사랑한다. '사랑'이니 '인류애' 같은 것들은 모두 사회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 가족은, 해체되어야 할 대상이다.
우리는 쓸데없는 것들을 금지시키는게 아니라, 담배, 마약 등 보다 훨씬 더 큰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출산을 금지시켜야 한다. 아나키즘이 성립하려면, 국가라는 제도의 근본과 뿌리가 되는 가족이 먼저 해체되어야 한다. 인류 전체에서 무조건적 사랑이 차지하는 비율은 0.00000001%도 채 되지 않는다.
무로 돌아가라.
Should I use Primal or Amethyst?
포스트구조주의는 권력과 언어가 자아를 조작한다는 구조를 폭로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 구조를 폭로하는 주체인 '나'마저 환상이라며 지워버리는 바람에, 역설적으로 현대 자본주의와 권력의 구조적 흐름에 개인이 아무 저항도 못 하고 휩쓸려 가게 만드는 허무주의의 유령을 낳았다.
포스트구조주의는 개인이 자본, 언어, 리비도의 흐름에 의해 '형성(Constitution)'된다는 causal history를 밝혀냈을 뿐인데도, 그것이 마치 그 흐름들이 개인을 '소유(Possession)'하고 지배한다는 권리인 양 착각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 결과 들뢰즈의 '욕망의 흐름'이나 닉 랜드의 '테크노-자본의 가속'은 해방의 언어가 아니라, 개인에게 구조에 동화되어 무한히 흘러갈 것을 강요하는 또 하나의 세련된 교리이자 첨단 유령(Spook)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그들은 심한 논리적 비약과 오류를 범하고 있다. 슈티르너가 의도한 '나'를 규정하는 것은 자아만이 아니다. 즉, 자아가 환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곧 '내가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자아는 사회적 언어 질서(대타자)가 규정하는 '텍스트 속의 자아(Discursive Ego)'일 뿐이다. 그 정체성의 틀이 가짜 환상으로 밝혀져 깨어질지라도, 그 틀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소유하고, 다시 조작하며 지금 여기 육체를 갖고 살아 숨 쉬는 '말할 수 없는 유일자(Unsayable Unique)'는 증발하지 않는다. 자아가 환상이라고 해서 '나'까지 없다는 주장은, 집주인이 가짜 신분증을 썼다고 해서 집주인의 물리적 실존 자체를 지워버리는 꼴이나 다름없다.
결국 슈티르너의 관점에서 참된 해방이란 어떤 고정된 형태(Morphnetic)의 정체성을 숭배하거나, 반대로 주체를 소멸시키고 흐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그 어떤 거대한 시스템과 알고리즘마저도 오직 나라는 유일자의 만족을 위해 언제든 쓰고 버릴 '도구와 소유물(Appropriation)'로 되돌려놓는 비형태적(Amorphnetic) 태도에 있다.
더 자세한건
에서.

On Poststructuralism
Dawn of the Amorphnetic Action Research Cell
모든 반인본주의는 인본주의다. 그러나 슈티르너는 아주 특수한, 유일한 예외 케이스다.
왜냐하면 다른 반인본주의는 인간이 아닌 어떤 것을 중심에 놓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중심에 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고 또 사유를 하는 주체가 자기 자신(인간)이기에 이는 인본주의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슈티르너의 '이기주의'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의 철학은 인간보다 더 깊은, 진정으로 사유를 하고 있는 '나'를 주체로 놓기 때문에 인본주의의 연장선에 놓이지 않는다.
쉽게 요약하자면, 다른 반인본주의는 인간보다 먼 것을 중심으로 놓기에 인본주의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슈티르너식 반인본주의는 인간보다 더 가까운 '나'를 중심으로 놓기에 인본주의와 구별된다. 또한 슈티르너를 제외한 반인본주의는 인간이 아닌 것을 중심으로 놓거나 아무것도 중심에 놓지 않는다는점에서, 항상 '인간'을 전제한다. 인간이 아닌 것을 중심으로 놓기 위해선 인간이라는 기준을 가져와야하고, 아무것도 중심에 놓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을 끊임없이 의식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슈티르너의 아주 단순한 '나 중심주의'는, 인간이라는 개념에 전혀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결국 철학의 반인본주의는 너무나도 복잡해지고 수많은 철학과 개념, 추상적인 것들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인본주의의 한계를 넘지 못했으나, 오직 단순하게 '나'만을 중심으로 둔 슈티르너는 역설적으로 인본주의를 넘어섰다(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시했다")고 볼 수 있다.
닉 랜드, 포스트구조주의, 들뢰즈, '자아는 없다'라고 외치는 뇌과학 등...을 비롯한 현대 철학은 사유하는 주체가 '나'라는 점에서 결코 슈티르너의 메서운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미 모든 철학은 슈티르너에서 끝났으며, "창조적 무"를 무시하고 새로 생기는 철학이 유령을 함유한다면 그것은 결코 슈티르너를 넘어설 수 없다.
자아를 아무리 부정하든, 나를 리비도적 흐름에 종속시키든, 외계적 자본에 복속시키든... 등등, 사유하는 주체가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기중심성을 잊으려고 시도하거나 탈피하려는 시도도 모두 자기중심성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자아'는 '나'가 아니다. 자아는 고정적이지만 '나'는 결코 고정적이지 않다. 나는 그 어떠한 개념, 언어로도 설명될 수 없다. 왜냐하면 표현되는 순간 나는 표현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외부적 요소가 자아를 구성한다고? 그렇다면 그 외부적 요소가 "내 소유"라고 왜 생각을 하지 못하는가! 이러한 슈티르너의 '유일자'가 반증 불가능성을 지닌다고 생각하면,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대가 유일자이기에 유일자가 반증 불가능성을 지니는 것은 당연한 이유다. 유일자는 외부에서 검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반증을 수행하는 그 주체 자신이 이미 유일자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해체하는 유령에 빠져서 자기중심성을 해체하려는 시도는, 인간이 물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온 지구상에서 물을 없애려고 하는 시도와 같다. (애초에 지구상에서 물을 없애려는 시도가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자기중심성은 일종의 과학이다. 왜냐하면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사유를 할 때 사유를 하는 주체가 전제되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성을 부정하는 것은 오른손으로 오른손을 잡는 것과 같고, "나는 지금 말을 하고 있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사실이 불편한가? 현대철학을 19세기로 퇴보시키는 듯 해보여서 구리다고 느끼는가? 어쩌겠는가, 이 글을 읽는 그대가 이미 '나'인데!
중도는 마약과도 같다.
극단화된 좌우갈등에서 사람들이 체제의 문제와 모순을 점점 깨달아가고 아나키스트가 되려는 순간, 중도는 사람들이 체제의 부당성을 인지하지 못하게 자신들 세력으로 포섭해버리고는 시스템 안에 종속시킨다. 그들은 막 늑대가 되려는 자들을 붙잡아서 순한 양으로 만들어버린다.
시스템의 문제점을 고치려면 시스템의 규칙과 시스템이 정한 링 밖으로 나와야한다. 대체 복싱 룰로 총든 강도를 어떻게 이길 것이라고 자만하는가? 종교개혁은 교황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은 왕에게 권리를 달라고 호소하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영국이 독립을 허가해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실천(praxis)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인류사에는 이제 지긋지긋한 '국가'라는 체제 자체를 뒤집어 엎을 시대가 도래했다.
중도라는 마약은 체제를 정당화해줄 뿐이다. 좌파와 우파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비정상국가인게 아니라,
'국가'는 애초에 결코 '정상'이 될 수 없다.
대다수는 아직도 환각에 취해있다. 그들은 자신이 계약을 하지 않았는데도 계약을 했다고 생각한다.
신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둘 뿐, 다른 무엇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즉, 신은 신을 위해 일할 뿐이고, 이기적이다. 그리고 신은 자신이 창조한 자들에게 "이타적으로 살아라, 나를 섬겨라." 라고 말한다.
인류 또한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둘 뿐, 다른 무엇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인류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인류이다. 그렇기에 인류는 이기적이다. 인류는 "개인은 인류를 위해 일해야한다!" 라고 외친다.
결국 개개인이 숭배하는 모든 것들은 이기적(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기중심적)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서는 안되는가? 왜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자들에게 침을 뱉고 분노하는가? "이기적인 것이 나쁘다"는 지난 2000년간, 아니 어쩌면 인류의 초기부터 이어져 왔던 하나의 고정관념이다.
현재 21세기에 주류가 된 무신론 또한 이러한 종교적 특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신'을 숭배하던 인류는 이제 돈, 국가, 명예 등...을 숭배하고 그것들을 위해 살아간다. 이러한 구조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도덕과 유사한 것을 중심에 놓고 그것을 숭배한다.
이기적인 사람이 왜 나쁜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왜 나쁜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조차 '자기중심성'을 내제한다. 결국 그것을 '나쁜 것'으로 여기는건 당신이기 때문이다.
신을 믿든, 국가를 숭배하든, 도덕을 따르든, 자아를 해체하든, 리비도적 욕망에 몸을 맡기든, 모든 인간은 이미 자기중심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유령'에 자기를 종속시키는 행위는 자기 자신이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내 말의 핵심이 뭐냐? 이기적으로 살라는 말이냐?
아니다, 당신은 이미 자기중심적이고, 모든 인간 또한 그렇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자기중심성을 '악'으로 여기는 그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고, 모든 인간이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 뿐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것을 인정할지 말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현대사회는 포이어바흐가 지적한 오류를 반복해서 범하고 있다.
AI가 인간을 뛰어넘을거라느니, 인본주의를 뚫고 반인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느니, 리비도적 흐름에 내 몸을 맡겨야한다느니... 등등.
우리는 우리가 아닌 것에 우리의 본질을 투영한다.
환경과 외부적 요인이 나를 구성했다고 해서, 그것이 나를 '소유'하는 것을 정당화시켜주진 않는다. 포스트구조주의와 현대철학은 이런 깊은 망상에 빠져있다.
나는 주체를 가지고 명확하게 생각하는 존재인 반면, 자본주의니 AI니 하는 것들은... 다르다.
인간은 의지를 갖고 있는 반면,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은 의지를 갖지 못한다. 닉 랜드 같은 철학자들이 재아무리 AI나 자본주의, 어떤 흐름 등을 주체적이고 의지가 있는 존재처럼 현란하게 수사적인 표현을 쓴다고 해도, 그것은 현실이 되지 못한다.
유일하게 의식이 있는 존재인 인류는 스스로 인본주의를 부정하고, 우리의 의식을 투영한 것에 반대로 종속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주체성을 회복해야한다.
이는 철학의 구조가 후대 철학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철학이 생기는 구조여서 생긴 오류로 분석된다.
새로운 철학, 독창적인 철학을 하기 위해 어떻게든 기존의 철학을 '낡은 것'으로 규정하고 해체하고 비판하는 과정이 결국 우리를 이 지경에 오기까지 만들어버렸다.
철학은 Escalation이 아니라, Dereification이다.
현대 철학의 또다른 문제점은, 철학의 구조가 새로운 철학을 전의 철학에 의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고대철학이나 과거의 독창적인 철학과 달리, 이제는 뭔가를 '비판'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는 뭔가 새로운 것을 세울 필요가 있다. 과거에 얽메이지 않는 그런 철학을.
Escape from the xenosystems.
연좌제를 향한 의문
조상이 죄를 저질렀는데, 왜 후손을 처벌하는가?
후손이 죄를 저질렀는가? 아니다. 비록 조상이 죄를 저질렀어도 조상에게게 자연적인 책임은 없다(합법적 폭력을 휘두르는 국가의 법이 그저 책임을 물을 뿐, 책임이라는 자연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후손에게 책임은 더더욱 없다.
연좌제는 국가라는 괴물이 자신의 위압감과 무서움을 더 강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 뿐이라고 보여진다.
애초에 연좌제를 시행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북한이다. 이것은 독재 정권에게만 이익이 되지, 다른 요소들에게는 아무런 좋은 영향도 주지 못한다.
비록 한국에서 법적인 연좌제는 없으나, 문화적/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연좌제가 보인다. 이를테면 독재자의 아들을 욕하거나, 친일파의 아들을 욕한다거나.
이런 사람들은 전부 '유령에 빠진 가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분노(혹은 도파민을 향한 욕구)를 승화시키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분출한다.
현재 시대에 필요한 것은 관심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니 뭐니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애초에 그대는 계약을 하긴 했는가? 그대는 계약서에 동의를 했는가?)그러니 사회의 안정이나 공공의 이익 같은 것에 신경을 끄고, 자신에게 집중하라.
친일파 집안이 부도덕하게 번 돈을 자식들에게 주었으니 욕하는거라고? 아니, 그대는 정말 도덕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인가? 그 허상을 부여잡고 그 허상을 잣대로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고 있는 것인가?그리고 무엇보다, 그 집안이 부자가 되든 뭘 하든 그게 대체 당신과 무슨 상관인가? 당신에게 피해를 끼쳤는가?국가가 말하는 '정의로운 시민', 다시 말해 이러한 부도덕한 일과 사회적 부조리에 분노를 느끼는 자들은 모두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을 기반으로 행동한다.
독재 정권에 화를 내거나 국가, 법 이런 것에 대한 부당함을 느끼는 것은 자연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애초에 나를 직접적으로 지배하고, 내 삶에 관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아무런 권위와 권력을 지니지 않고 그저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자들은, 그대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대 안에 있는 자기중심성을 부정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유일자임을 인지하라. 유일자가 무엇이냐고? 그것은 그대만이 알 수 있는 '그대'이다.
무언가를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해보자. 그 하나의 금지사항을 제외하고는 다 허용되고, 자유롭게 해도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은 혼돈으로 가득한 끔찍한 곳일까? 아니면 유토피아? 이에 반대하는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세상은 혼돈이고 끔찍할거야.
그래, 나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세상을 원한다. 미래가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그건 중요하지가 않다. 아나코-니힐리스트에게 중요한건, 현재의 부정과 파괴 뿐.
Bring back the war of all against all.
A lot of right folks in Korea (even in US) love George Orwell's 1984, calling it proof of how corrupt the left is. But honestly, the book is a critique of authoritarianism and state power itself, across the entire political spectrum. It’s less of a right-wing book and more of an anarchist.
Orwell doesn’t just criticize Oceania; he paints its rivals, Eurasia and Eastasia, in the same dark colors. It shows that when any political group gets power, they all end up falling into the same totalitarian traps. If someone actually reads and understands this book, they can't really be far-right.
In the story, the world is split into three parts fighting a never-ending war, but their systems and control tactics are exactly the same. Real politics is no different. Korea seems torn apart by left vs. right, but both sides have the same authoritarian habits.
So, what’s the takeaway? Watch out for and reject totalitarianism. That warning isn't just for the left—it applies just as much to the right.
From the mind of a Nation
Came a Cold and Mindless Creation
Xenophobic MegalomanicSS
They travel space to begin Their ATTACKS
On The Earth and The UNIQUE RACE,
As they scan for just one face
The Big Brother... just ONE EYE
They seek the Freedom...
"HE MUST DIE!"
EXTERMINATION...
"OBEY"
Complete and Total DOMINATION!
In the way stands the UNIQUE RACE...
Endless scans for just one face...
Face... Face... Face... Face...
DEREIFICATION!
Is the Source of Their FRUSTRATION
They cannot be The LORD of POWER
So many nodes
It's built on 9...10
But... He could be just "UNIQUE ONE"
ANNIHILATION has begun!
"THE ORDER" is what they want
"WE MUST HAVE THE KEY OF POWER!"
EXTERMINATION...
"Obey"
Complete and Total DOMINATION!
In the way stands the UNIQUE RACE...
Endless scans for just one face...
Face... Face... Face... Face...
"YOU WILL OBEY THE LEVIATHAN!"
"WE MUST HAVE THE ORDER!"
"LOCATE THE IP!"
SCAN EARTHLINGS!
SCAN COMMENCING!
"FIND HIM!"
We have location...
TRUE HEARTS...
IT'S THE LIBERTARIAN!
From the mind of a Nation
Came a Cold and Mindless Creation
Xenophobic MegalomanicSS
BENT on DESTRUCTION
스레드 날라간거 여기에 다 복구해야겠다